연블락 재테크 기록

반응형

#자영업을 한다면 꼭 해당 일을 해보기

군 전역 이후, 대학교 동기들은 커리큘럼 상 저의 선배가 되었고, 1년 후배들과 대학을 다니는 동안 아쉬운 점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아무리 잘 지내려고해도 동기가 아닌 이상 친해지는데 한계가 있었고, 혼자서 전공수업을 들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팀플레이 수업이 많고, 시험공부도 동기들끼리 전략적으로 하는 학과 특성상, 학업성적에도 영향을 미치기도 했었습니다.
약 6개월의 동안 했던 일이지만, 당시 군 전역 직후에 에너지가 넘쳤던 저는 일을 정말 제대로 배울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자영업을 하게 된다면, 해당 업종에서 다시 일을 한 번 해보겠지만, 어렸을 때 이런 시스템을 몸으로 뛰면서 눈으로 익힌 경험은 저에게 정말 소중한 경험입니다.

#사장님이 했었던 말

산들해 매장의 사장님은 전형적인 금수저 집안이였습니다.
본인은 삼성전자를 다니다가 아버님의 가업을 물려 받음으로서 퇴사를 하고 사업을 하셨습니다.
아버님은 산들해 외에도 다른 사업체를 운영하기도 하셨고, 아들들이 아버님의 자본을 토대로 산들해 한정식을 창업함으로서 '아버님의 자본과 부를 토대로 자식들이 더욱 부자가 된다."는 것을 실현하기도 하셨습니다.
사장님은 사실 매장에 한달에 1-2번 정도 오셔서 자주 뵙지는 못했습니다.
지금 제 기억으로는 인상이 좋으셨고, 여유가 있으셨습니다.

사장님이 어느 날은 식사 중에 하셨던 말이 있고, 아직도 기억이 나는 말이 있습니다.
"이 곳은 여러분이 거쳐가는 곳일 뿐, 여기서 더 좋은 곳으로 가셨으면 좋겠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할 예정이였기 때문에, 산들해는 사장님 말씀대로 저에게 이 매장은 거쳐가는 곳이였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이 홀 직원들분들 중에는 더 많았습니다.
사장님께서는 성공하신 사업가였지만, 근무여건 및 급여를 더 이상 개선해주실 생각은 없으셨기 때문에, 그러한 말씀을 하신 것 같습니다.
이미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사업체이고, 개인에게 특정 지위를 맡기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 사업장의 시스템에서 나타났습니다.
중국집 사장님이 주방의 심기를 건드려서 사업장이 문을 닫았다는 말은 다들 한 번씩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같이 일했던 형님들

매니저 포함 같이 일했던 형들은 20대 후반이였습니다.
일을 같이 하면, 손님들에게도 잘하고, 열심히 사는 형님들이였습니다.
실제로 형님들에게 일을 많이 배웠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할 지에 대해서는 기준이 없었던 형들이였습니다.
형들은 20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으면, 3주 안에 다 쓰고, 약 1주일 동안 집에만 있다가 다시 3주안에 월급을 다 쓰곤 했습니다.
여자친구와 대게집에서 40만원 어치 식사를 하는 등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소비를 하셨습니다.
개인의 인생은 본인이 책임을 지는 것이라서 저와 다른 생각을 가진 형님들에 대해서 잘못되었다고 단정짓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 제가 그 형들의 나이가 되었고, 당시보다 나은 상황이 됐음에도 불고하고, 지금도 저는 그러한 소비는 쉽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탐대실

12월부터 5월까지 정규직으로 일하고, 8월부터는 일당제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식당이 워낙 힘들어서 일하러 오는 사람들이 도망치기 일수였고, 특히 숙련도 높은 직원이 귀했습니다.
때문에, 이전에 일했던 분들을 매니저가 종종 연락해서 바쁠 때 일을 도와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파견직을 하면 일당으로 7만 5천원을 챙겨주었습니다.
당시 시급(5,210원)을 생각하면 꽤 높은 일당이였고, 월세를 내기 위해서도 고정된 수입이 필요해서 종종 알바를 했었습니다.
물론, 알바를 하는 것도 좋았지만, 일을 하면 역시 너무나 힘들어서, 미래를 준비할 에너지와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이러한 체력의 부침이 결국 소탐대실로 이어졌습니다.

LH에서 제공하는 대학생전세임대주택은 매우 낮은 금리로 학생들에게 전세주택을 제공해주는 제도였는데, 1년 동안 지원가능한 기간이 3-4일 밖에 되지 않았었습니다.
제가 10월 어느 때 3일 정도 스트레이트로 알바를 하고, 어느날 검색을 해보니 지원기간을 하루 차이로 놓치게 되었습니다.
당시 월세와 전세임대주택 이자를 비교하면 매달 30만원 고정 지출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즉, 7만원 벌기 위해 일을 열심히 한것이 결국 1년 동안 매달 30만원의 고정지출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 날의 교훈은 지금의 저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생계도 중요하지만, 큰 그림을 그리고 목표를 실현 해야한다.", "작은 것을 얻으려다가, 큰 것을 놓치면 안된다." 입니다.

#목표

사람은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는 부모들이 어떻게든 좋은 학군에서 자식을 키우기 위한 니즈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극복이 가능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당시 한식집 시스템을 구축한 사장님과 사장님 집안은 훌륭했지만, 이를 직접적으로 배우기는 어려운 환경이였습니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그들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고, 하루에 수백 명의 손님을 대응하면서 자영업의 서비스 마인드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같이 일하는 형님들이 한 달 월급으로 3주 동안 무분별한 소비를 하는 환경이였고, 당시 심신이 많이 지쳐있었기 때문에, 저도 형들처럼 놀고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곳은 거쳐가는 곳이고, 저는 월세보증금 마련을 위해서 여기서 최대한 버티고 나가야 겠다는 목표가 있었고 이를 실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2014년 당시 호주의 달러는 가장 비쌀 때였고, 친구들 중에 군 전역 이후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간 친구들은 정말 큰 돈을 벌어오기도 했습니다.(2-3천만원 이상)
아마 제가 한식집에서 투입한 노력을 호주에서 가서 했더라면, 외국문화 및 영어, 그리고 훨씬 많음 금액을 저축할 수 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후회도 결국은 제가 지금의 삶을 영위하는 데에 좋은 결정을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제가 지내는 삶의 방향이 최선인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기회비용을 고민하면서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반응형

공유하기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